Musical The Lion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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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의 구세주, 줄리 테이머

2019.05.14

공연칼럼니스트 박병성

디즈니가 브로드웨이 시장에 진출하고 첫 작품으로 <미녀와 야수>를 성공시킨 후 후속작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컸다. <미녀와 야수>가 가족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이끌며 이슈를 일으켰지만 단순한 스토리와 동화적인 내용 때문에 작품성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미녀와 야수>는 토니상의 주요상인 작품상이나 극본상, 음악상 부문에서는 외면당하고 무대상과 의상상만을 받았을 뿐이다.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의 고민은 깊었다. 자사의 애니메이션 콘텐츠는 가족 관객들을 위한 작품이라 공연의 주 관객층인 중장년층을 만족시킬 만한 콘텐츠가 마땅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디즈니의 세 번째 뮤지컬이 된 <아이다>에 관심을 둔 것도 그 때문이다. 엘튼 존의 의견으로 오페라 <아이다>를 어린이 버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던 계획을 바꿔 뮤지컬 제작을 하기로 한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뮤지컬 제작에 돌입한 작품이 바로 <라이온 킹>이다. 

당시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을 이끌던 토마스 슈마허는 디즈니의 콘텐츠 중 뮤지컬로 만들기에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라이온 킹>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캣츠>처럼 한 종류의 동물만 등장하지도 않고, 작게는 미어캣부터 크게는 코끼리까지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라이온 킹>을 무대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디즈니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즈너의 생각은 달랐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을 성공시키면 더 큰 부가가치가 생긴다고 판단하고, 뮤지컬 <라이온 킹> 제작에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결과적으로 <라이온 킹>은 현재 매출액 8조 원에 이르는 규모로 영화를 포함한 모든 엔터테인먼트 상품 중 가장 많은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 줄리 테이머였다. 줄리 테이머는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관심이 많았다. 프랑스 자크 르콕 연극 학교에서 마임과 가면극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무엇보다도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4년의 시절이 그의 연극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후 애초 3개월을 계획하고 떠난 인도네시아 여행은 동양의 가면극과 공연에 매료되면서 4년으로 늘어났다. 그곳에서 일본, 독일,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와 배우로 구성된 극단 떼아트르 로를 구성하여 공연하면서 동양의 가면극을 이용한 자신만의 연극 세계를 구축해갔다. 인도네시아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라마마 극장이나 퍼블릭 시어터와 작업을 이어갔다. 1992년에는 일본의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오이디푸스 렉스>를 올려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빵과 인형 극단 식의 대형 퍼펫들과 다양한 가면들이 활용됐다. <라이온 킹>에서 무파사가 죽었을 때 긴 줄의 종이로 눈물을 표현했던 방식이 오이디푸스가 눈이 머는 장면에서 먼저 선보이기도 한다. 이후 1996년 토니상 후보작인 <후안 다리언; 어 카니발 매스>에서도 인형을 이용한 그녀의 장기가 두드러졌다. 

<라이온 킹>에서 그녀는 그림자극, 발리의 무용극, 일본의 인형극 등 동양 연극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을 의뢰받기 전까지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했던 그녀는 이 작품의 중심 컨셉을 ‘생명의 순환’(작품의 첫 곡이기도 하다)이라고 보았다. 탄생의 공간인 프라이드 록과 죽음의 공간인 코끼리 무덤을 회전무대로 순환하게 만드는 컨셉이나 무파사에게서 심바, 그리고 그 이전의 조상들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강조하여 표현했다. 거스를 수 없는 삶의 순환은 캐릭터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애니메이션에서 심바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원숭이 주술사 라피키를 뮤지컬에서는 여성 캐릭터로 바꿔 대모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존재감이 약했던 암컷 사자들의 역할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무대화를 성공시킨 것은 그녀가 그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가면극과 인형극을 통해서였다. <라이온 킹>은 최고의 무대 메커니즘으로 칭송받지만 이 작품의 무대 기술의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것이 아니다. 프라이드 록이나 코끼리 무덤이 회전무대로 돌아 나오는 것과, 원근감의 원리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물소 떼 장면에 그나마 간단한 기술이 사용되었을 뿐 기본적인 무대 메커니즘은 가면극에 기반한 원시적인 연극 방식이다. 현대에는 영상을 이용한 사실적인 묘사나 심지어 홀로그램으로 입체적인 표현까지도 가능하지만 이러한 영상 기술의 도움 없이 광활한 사바나 풍경을 재현해 낸다. 이것이 바로 줄리 테이머의 마술이다. 

줄리 테이머는 이것이 연극임을 굳이 숨기지 않지만 무대의 마술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무대 연출도 그렇지만 대표적인 것이 가면이다. <라이언 킹>의 가면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를 완전히 숨기지 않는다. 인형을 조정하는 배우나, 가면을 쓴 배우를 드러내면서 가면과 배우가 하나가 되도록 한다. 캐릭터의 본질만을 드러낸 가면과 살아있는 배우가 하나로 결합되어 공연을 보다 보면 마치 가면이 살아있는 듯한 판타지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 줄리 테이머의 마술이고 바로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연극적 판타지를 재현한 것이다. 줄리 테이머는 뮤지컬 <라이온 킹>을 성공시키면서 브로드웨이에 디즈니의 전설로 떠오르게 했고 자신도 토니상 최초의 여성 연출가 수상자라는 영예를 얻는다. 

이후 줄리 테이머는 850만 달러 규모의 초호화 뮤지컬 <스파이더맨>에 참여하기도 하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마술피리>, 영화 <프리다>와 비틀즈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영화 <어크로스 유니버스>와 <템페스트>의 감독으로 활약하는 등 장르를 넓혀가며 재능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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