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al The Lion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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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음악가들이 탄생시킨 <라이온 킹>의 음악, 엔터테인먼트 본연의 즐거움과 쾌감을 전하는 작품

2018.11.02

김경진 평론가

영화와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다. 디즈니의 1994년 작 〈라이온 킹〉이다. 이 작품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순위 40위권 중 유일하게 20세기에 제작된 작품이며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틈새에 자리한 단 하나의 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라이온 킹〉은 할리우드 역사를 통틀어 39번째로 높은 수입을 거둔 영화이기도 하다. 이 놀라운 기록은 〈라이온 킹〉의 매혹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 요셉과 출애굽기의 핵심 인물인 모세의 삶,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가져온 탄탄하고 극적인 이야기 구조는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에 부합할 수밖에 없었으며, 단순하지만 사랑스럽고 강렬한 개성을 지닌 여러 캐릭터의 매력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탁월한 음악은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의 감성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작품에 약동하는 생명력을 부여해 주었다.

위대한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손잡고 탄생시킨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에비타〉를 비롯하여 아바의 비요른 울바에우스, 베니 안데르손과 함께한 〈체스〉, 앨런 멘켄과 작업한 디즈니의 〈알라딘〉 등 많은 뛰어난 뮤지컬의 노랫말을 썼던 작사가 팀 라이스(Tim Rice)는 〈라이온 킹〉의 작업을 위해 작곡가를 찾고 있었다. 그의 새로운 파트너는 엘튼 존(Elton John)으로 결정되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두 뮤지션(팀 라이스는 1994년, 엘튼 존은 1996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매년 ‘부유한 뮤지션’ 리스트의 상위권에 랭크된다)의 협업은 놀라운 결과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영화 사상 손꼽히는 오프닝 신을 채우는 강렬한 아프리카의 향취 가득한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와 어린 심바와 친구 날라, 무파사의 집사인 코뿔새 자주가 노래하는 흥겨운 「아이 저스트 캔트 웨이트 투 비 킹(I Just Can't Wait To Be King)」,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스카와 그의 음흉한 심복들인 세 하이에나가 펼치는 「비 프리페어드(Be Prepared)」, 왕국에서 쫓겨난 심바의 새로운 친구들, 미어캣 티몬과 혹멧돼지 품바의 ‘걱정 말라’는 유쾌한 조언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그리고 달콤한 사랑 노래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Can You Feel The Love Tonight)」까지 5곡을 완성했다.

스코어를 담당한 이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Hans Zimmer)다. 지금 그의 이름은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과 〈씬 레드 라인〉, 〈글래디에이터〉 같은 걸작을 포함하여 150여 편에 이르는 사운드트랙을 남긴 거장의 위상을 지니지만 90년대 초반 당시에는 〈레인 맨〉, 〈델마와 루이스〉, 〈트루 로맨스〉 등으로 막 떠오르던 작곡가였다. 아프리카의 목소리와 타악기 리듬을 담아낸 〈파워 오브 원〉으로 디즈니 스튜디오의 주목을 받게 된 그는 〈라이온 킹〉의 스코어를 맡아 전에 없던 역작을 탄생시켰고 그 자신 커리어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독일 출신인 한스 짐머는 10대 시절 영국으로 이주하여 70년대 후반부터 키보드와 신시사이저 연주자로 활약해 왔다. 영국의 버글스(Buggles), 이탈리아의 크리스마(Krisma), 스페인의 메카노(Mecano) 등 다양한 뉴웨이브/신스팝 밴드와 함께 활동했던 경험은 이후 그의 독창적인 스코어 작업에 녹아든다. 예컨대 기존의 오케스트라 중심 스코어에서 영역을 확장하여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거나 토속적 색채를 도입하는 등 열린 태도로 음악 작업을 전개하는 그의 방식은 〈라이온 킹〉에서 꽃을 피웠다.

장엄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웅장하고 서사적인 오케스트레이션, 원초적 에너지가 넘실대는 역동적인 아프리칸 리듬과 코러스, 때로 카를 오르프의 칸타타를 연상케 하는 합창, 아름답고 신비로운 신시사이저 사운드는 〈라이온 킹〉 스코어의 주요 요소들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가수인 레보 엠(Lebo M.)이 스코어와 노래에 아프리카의 색채를 더하고 보컬 및 코러스 편곡을 담당했다. 그의 영향력은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의 첫 소절, 남아공의 원주민 줄루족의 언어로 직접 노래하는 ‘아빠, 사자가 와요 / 그래, 사자구나 / 우린 물리칠 거야 / 사자와 표범이 이 트인 곳으로 오네’라는 잊을 수 없는 인트로부터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결국 1995년 개최된 제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이온 킹〉은 음악상(Original Score)과 주제가상(Original Song) 등 2개의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주제가상은 엘튼 존이 노래한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이 받았지만 함께 후보에 올랐던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와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또한 많은 이들의 가슴에 기분 좋게 각인되기에 충분한 곡들이었다. 작품과 음악의 인기, 완성도에 힘입어 사운드트랙은 세계적으로 1,800만 장 이상 팔렸고 미국에서 다이아몬드(1,000만 장) 판매량을 기록한 유일한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이기도 하다.

〈라이온 킹〉 이후 레보 엠은 한스 짐머의 사업 동료이자 〈라이온 킹〉 스코어에 함께 참여했던 작곡가, 제작자인 제이 리프킨(Jay Rifkin)과 함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라이온 킹〉에 참여하며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품에 표출되는 ‘아프리카의 요소와 영향’을 강조하여 새롭게 작곡하고 편곡한 곡들을 수록한, 마치 속편 사운드트랙과 같은 앨범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인 디즈니 스튜디오의 지원이 이어졌고 『리듬 오브 더 프라이드 랜드(Rhythm Of The Pride Lands)』라는 제목이 붙은 앨범은 1995년 초 발매되어 1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은 사운드트랙과 더불어 뮤지컬 〈라이온 킹〉의 뼈대를 이루게 된다. 줄리 테이머(Julie Taymor)의 연출, 애니메이션 버전의 감독인 로저 앨러스(Roger Allers)와 시나리오를 썼던 아이린 메치(Irene Mecchi)의 대본, 엘튼 존과 팀 라이스, 한스 짐머와 레보 엠의 음악은 완벽한 시너지로 거듭났다.

뮤지컬의 어마어마한 성공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1997년 7월 미니애폴리스에서 첫선을 보이고 10월 브로드웨이 뉴암스테르담 극장에서 초연된 후 2006년 민스코프 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이 작품은 21년간 8,700회 이상 무대에 오름으로써 브로드웨이 사상 3번째 장기 상연작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는 1999년 10월 라이시엄 극장에서 초연 후 지금까지 7,600회 이상 공연을 펼쳐 6번째 장기 상연 뮤지컬이 되었다. 20개국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공연된 이 작품을 관람한 이들은 9,500만 명에 이르며 10억 달러가 넘는 박스오피스 수입을 거두어 〈오페라의 유령〉을 누르고 그 부문 최고 기록을 세웠다. 1998년 제52회 토니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뮤지컬과 뮤지컬 연출(여성으로서는 최초), 안무, 무대 디자인, 의상 디자인, 조명 디자인 등 6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뮤지컬은 애니메이션과 몇 가지 차이를 지닌다. 왕 무파사의 주술사인 개코원숭이 라피키는 여성 캐릭터로 바뀌었고 날라는 자신을 짝으로 원하는 스카 때문에 고향을 떠나며 티몬은 폭포에서 익사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음악이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엘튼 존과 팀 라이스 콤비는 기존의 5곡 외에 뮤지컬을 위해 3곡을 더 썼다. 자주와 무파사, 어린 심바가 함께하는 경쾌한 리듬의 「더 모닝 리포트(The Morning Report)」, 세 하이에나가 펼치는 록 트랙 「차우 다운(Chow Down)」, 스카와 자주, 세 하이에나의 긴장감 넘치는 「더 매드니스 오브 킹 스카(The Madness Of King Scar)」가 그 곡들이다. 한스 짐머의 기존 곡 중 뮤지컬에 다시 포함된 작품은 슬픔과 희망, 아름다움을 담은 「킹 오브 프라이드 록(King Of Pride Rock)」뿐이다. 그는 레보 엠과 함께 급박한 리듬과 코러스로 전개되는 「더 스탬피드(The Stampede)」와 라피키의 애절한 찬송이 담긴 「라피키 모언(Rafiki Mourns)」, 성가풍 코러스, 애수 어린 날라의 아름다운 노래와 「킹 오브 프라이드 록(King Of Pride Rock)」의 비장한 선율이 이어지는 「섀도랜드(Shadowland)」, 민속 리듬과 코러스, 오케스트레이션에 어우러지는 심바의 열창 「엔드리스 나이트(Endless Night)」를 추가했다.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 큰 역할은 한 사람은 역시 레보 엠이다. 한스 짐머와 제이 리프킨, 마크 맨시나(Mark Mancina)와의 공동 작업을 포함해 그가 작곡에 참여한 작품은 10곡에 이른다. 토속적 리듬과 코러스가 강조되는 아프리카의 향을 머금은 그의 곡들을 보자. 차가운 신시사이저에 어우러지는 성가 「그래스랜드 챈트(Grasslands Chant)」, 격정적인 아카펠라 합창과 타악기 리듬으로 구성된 「더 라이어니스 헌트(The Lioness Hunt)」, 빠른 신시사이저 리듬과 신비로운 코러스, 현악 오케스트레이션 위로 흐르는 무파사의 노래 「데이 리브 인 유(They Live In You)」와 라피키, 심바가 노래하는 「히 리브즈 인 유(He Lives In You) (Reprise)」(같은 곡의 변주), 또 다른 아카펠라 합창 「원 바이 원(One By One)」 등 대부분 그 중심에 ‘아프리카’가 자리한다. 애니메이션이 동화와 팝 음악의 옷을 입은 무겁지 않은 드라마였다면, 뮤지컬 〈라이온 킹〉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향취가 강조된(그러나 실은 더없이 정교하고 세련되게 구성되고 짜인) 시청각의 자극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본연의 즐거움과 쾌감을 전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진 | 스테이지톡, Joan Marcus ⓒDis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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